반란, 왕식렴(王式廉)의 군대를 이용한 정종의 즉위와 서경(西京)천도 추진 등은 왕권의 불안정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뒤를 이은 광종은 강력한 왕권확립을 위해 과거제도의 채용과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 실시, 공복(公服) 제정. 독자적인 연호의 사용, 훈신 숙청을 통하여 과감한 중앙집
고려를 압박하며 조공과 무리한 요구를 일삼으며 고려에 대한 정복전쟁으로 내정간섭을 일삼으며 고려의 자주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고, 정치적 운영에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고려 정부의 대몽 항전은 애국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무신 집권자들의 사적인 권력 유지가 주요 목적이었고, 강
법회의 노동력제공 등 불교활동을 벌여온 香徒가 자치단체로 변신하여 호장의 지도를 받음.
향, 부곡은 농민 거주(신라때 생김). 부곡이 군현으로 군현이 부곡으로도 됨.
고려 때 생긴 所는 금, 은, 동, 철, 종이, 먹, 도자기 등 특정공장들의 집단거주지
촌에는 외관이 파견되지 않고 1촌1성의 원칙
사건이 있은 후 유인석이 북간도로 들어가 그 때부터 만주가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 본거지가 됐다. 이시영 여섯형제들도 만주 통화현으로 망명하였으며 이승만과 안창호는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김좌진, 안창호, 노백린 등은 군대를 키워 나라힘을 길렀으며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에서 학교가 많이
고려와 몽고(원)사이의 주요 역사사건을 나열한 연대표를 통해서 대략적인 역사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게 하였고, 다음으로는 구체적인 원간섭기 고려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마지막은, 우리의 의견을 중심으로 원간섭기 고려에 대하여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1. 지배란? 간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