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음구는 음악적 성격에서 생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이를 문학적 성격으로 다시 따져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악곡상 필요에 의해 생겨난 이들 여음구는 문학적으로 어떤 성격을 지니며 또 어떤 기능을 할까. 우선 연체시에 있어서는 각 연의 단락을 나누어주는 구실을 하며, 다른 한편으로
속요를 말 할 수 없다고 하고, 넋 나간 푸념에 얹혀 애잔하고 처연하게 흘러나오는 정한의 가락을 도외시하고는 속요를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고려가요는 환희에 들뜬 유쾌한 순간보다는 애원하며 슬퍼하는 장면이 주류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고려시대의 사회상과 연관시
시가류의 경우 특정 갈래의 특징을 담지한 대표 텍스트를 선정하도록 유도하였다고 본다 조희정, 「고전 정전의 재검토」, 『문학교육학』제 25호, 한국문학교육학회, 2008.
. 고전시가에서는 사대부 문인들의 텍스트가 반복 채택되었으며, 고려가요의 경우에는 전 시기에 걸쳐 상저가와 청산별곡만
고전문학도 인문학의 한 부문을 차지하고 있다. 고전문학의 연구전망이 오늘날의 학문적 주류의 폐해를 극복하는 대안을 모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시간적으로 지나간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복고적인 반복으로 나타나서 새로운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것 같아 보이지만 때로는 신선한 안
형식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고려시대에는 한문학(漢文學)이 문학의 주류를 형성함으로써 우리 문학은 민속문학적(民俗文學的) 위치에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여 왔고, 평민문학과 귀족문학이라는 두 가지 문학이 발생하게 되었으니, 경기체가가 귀족의 문학이라면 속요는 평민문학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