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는 너무나도 중요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동안 우리는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신라인에 의해 쓰여진 삼국사기를 토대로 연구를 해왔다. 그러나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은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시기에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 시대에 직접 고구려인에 의해 쓰여진 기록이다. 게
1.광개토대왕은 누구인가?
재위기간에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므로 영락대왕이라 일컬어졌으며, 사후의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본명은 담덕(談德)인데, 중국측 기록에는 안(安)으로 전한다. 고국양왕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뜻이 고
1.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의 배경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에 관해 접근해보기에 앞서 우리는 당시 고구려가 어떻게 영토확장이 가능하였는가에 관한 배경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고구려는 4세기 무렵의 소수림왕 때에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을 설립하였으며, 율령을 반포하여 체제의 기틀을
광개토대왕 비문을 통해본 고구려
(천하관 세계관)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을 분류하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추모왕에서 광개토왕까지의 세보(世譜) : 이 부분은 서언(序言)격으로 고구려의 건국 내력과 왕계(王系)에 관한 기록으로서 추모왕(동명성왕)이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광개토대왕뿐만 아니라 고구려 왕들에게 일반적으로 부여되는 미칭이었다. 이런 식의 시호를 받은 왕은 광개토왕이 처음이다. 기록에 의하면, 광개토왕은 삼국사기에는 이름이 담덕(談德)으로, 중국 기록에는 안(安)으로 되어 있다. 고구려 제 18대 고국양왕의 아들로 재위기간은 392년 5월에 즉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