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감을 설치하기 전 중앙에 어떠한 교육기관이 있었던 것이 분명함.
성종 8년(989년)에 ‘태학조교 송승연을 국자박사에 임명하였다.’라는 기록되어 있음.
(2) 국자감의 제도
국자학·태학·사문학의 3학체제.
각각 박사와 조교를 두어 교육을 맡게 함.
문종 때, 국자학·태학·사문학·서학
국자감을 창건하였다. 국자감은 고려의 최고학부로서 관리등용에 대비하는 교육기구로서 문묘와 교육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국자감은 일종의 종합대학으로서 그 안에 6학, 국자학, 태학, 사문학 및 율학, 서학, 산학 등 6개의 단과대학을 두었다.
향교는 지방에 설립된 관학교육기관으로 지
교육을 맡게 하였다. 즉, 권학관(권학관)을 각 주(州)에 두었던 것이다. 이것은 기록에 나타난 전국적인 규모의 지방교육을 담당한 권학관(勸學官) 제도(制度)의 시초로서 주목할 만한 교육사적(교육사적) 의의(意義)를 지닌다.
Ⅱ. 고려시대교육기관 관학 국자감
1. 등장발달
①당 국자감의 영향
교육기능만 있었다는 것이다
향교(향학)지방학교
-국자감의 축소(문묘의 제를 두고 있는 곳이어서)교육수준은 동서학당과 같은 중등수준이다. 문묘이외에 명륜당이 있는데 이것은 학생들에게 학을 강의 하는 곳이다.
고려시대의 사학
-십이(공)도:12개의 사립교육기관, 고등교육기관으로 국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