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비문의 세계> p255~256
Ⅲ.광개토왕비에 보이는 정복활동과 대외관계
1.정복활동
광개토대왕은 위대한 정복군주인 동시에 유능한 통치자였다. 광개토대왕대 고구려의 정복전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실질적인 농경지의 확보와 민호의 획득을 통한 국력배양에 있었음은 물론이지만 전제
발전을 전개하였다. 소수림왕대에 이르러 고구려는 율령을 반포하고 태학을 설치하는 한편 신흥종교인 불교를 수용하는 등 과감한 문화정책을 추진한다. 이러한 문화정책의 기반위에 광개토대왕과 장수왕대에 이르러 고구려는 서쪽으로는 요하를 넘어 멀리 시라무렌 유역까지, 북쪽은 북부여의 옛 땅
본피부(本彼部)의 두복지우지(頭腹智于支), 사피부(斯彼部)의 모사지우지(暮斯支于支))가 모여 중신회의 개최하고 전대의 두 왕이 절거리에게 재물을 얻도록 왕교(王敎)를 내린 것을 의논하여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그리고 별도의 교시(別敎)를 통해 절거리가 먼저 죽으면 그의 재산은 {아우인 아
본이 구미 열강의 국민사를 모델로 삼아 태고적 계기적으로 연속하는 자기 완결적인 ‘일본사’를 만들어 낸 것에 대항하여 동아시아 각국은 제각기 자기 완결적인 ‘민족사’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성찰에 한발 나아가, 저자는 근대 국민 국가가 전유하는 고대 동아시아 역사상을 해체하고 자율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