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탕트와 그 이후의 정세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군비는 급속도로 증강되었다. 대륙간 미사일의 경우 소련은 1980년대 중반까지도 여전히 미국을 확연히 앞서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초에 동서독 관계와 국제관계는 확실히 긴장 완화로 다가섰다. 제네바 군비축소회의는 1962년
도래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기반에서 그는 자본주의는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때문에 붕괴될 수 밖에 없고, 공산주의는 역사 발전의 종점에서 영원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소련을 대표하는 공산주의 국가들은 몰락하고 자
1장. 국제적 긴장의 완화(1953~1962)
* 53년초 아이젠하워대통령 ~ 62년말 쿠바미사일 위기 때까지 국제관계의 시대적 특징
1)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vs. 소련공산당 제1서기 흐루시초프의 관계개선 의지 증대
2) 미·소 공식, 비공식 접촉 증대
3) 독일문제 및 핵무기 경쟁에 의해 발생된 문제 등 미해결의
붕괴된 것도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특히 핵으로 무장된 (군사적 의미에서) 초강대국이 생존을 보장하고 보다 더 발전하려는 시도가 붕괴를 초래한 것이다. 전체주의 정치체계인 구소련의 붕괴는 스탈린 시대부터 예견되어 왔었다. 그러나 후르시초프와 브레즈네프 시대를 거치면서는 소련의 붕괴를 예
붕괴된 것도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특히 핵으로 무장된 (군사적 의미에서) 초강대국이 생존을 보장하고 보다 더 발전하려는 시도가 붕괴를 초래한 것이다.
전체주의 정치체계인 구소련의 붕괴는 스탈린 시대부터 예견되어 왔었다. 그러나 후르시초프와 브레즈네프 시대를 거치면서는 소련의 붕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