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에 걸친 사화로 잠시 기세가 꺾여 있던 사림 세력은 향촌 사회에서 쌓은 기반을 바탕으로 중종대에 다시 중앙 정계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 나타난 조광조의 빠른 승진이나 급진적 개혁이 가능했던 것은 모두 사림파의 세력 확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
3.결론
:4대사화는 1575년(선조 8)에 이르러 당쟁(黨爭)이 일어나기 전의 선비들에 대한 옥사였다. 그러나 사화는 소수인의 음모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고, 파당을 가진 다수인의 공공연한 논쟁이 따르는 대립과 투쟁에서 패자는 반역자로 몰려 지위를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고, 한 파가 승리하면 이
조광조는 1482년 8월 10일 한성에서 출생하였다. 조씨 가문은 대대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운바 막강한 무장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북면이 토호적 기반이라는 점 때문에 중앙정부로 진출하여 유력한 가문이 되기는 힘들었다. 계유정난을 계기로 한양 조씨가는 중앙 정계에서 완전히 도태되
조광조의 정치개혁과 기묘사화
정암 조광조(靜菴 趙光祖)는 성종 13년(1482)에 태어나 청년기의 대부분을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로부터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로 이어지는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서 보냈다. 하지만 1498년의 무오사화로 인해 희천으로 유배되었던 영남사림파의 거두 김굉필을
사화를 발생시켰다. 김인숙(2009), 『조선4대 사화』 , 느낌이 있는 책, 5쪽
조선 시대 연산군대에서 중종 대에 일어난 4대사화인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외에도 8가지의 큰 사화가 있었다. 우리는 사화 중에서 시대 순으로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무오, 갑자, 기묘, 을사사화에 대해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