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다산 정약용 소개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실학자로서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가 한국 최대의 실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정
다산이 10세 이전에 지은 시문을 모은 삼미자집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1777년 다산은 자신의 학문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가 실학의 선구자 성호 이익이다. 다산이 두 살 되던 해에 성호가 세상을 떠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산은 성호의 길을 접
다산이 10세 이전에 지은 시문을 모은 삼미자집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1777년 다산은 자신의 학문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가 실학의 선구자 성호 이익이다. 다산이 두 살 되던 해에 성호가 세상을 떠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산은 성호의 길을 접
다산이 곡산으로 부임하는 길에 나타나 백성들의 고통 사항 10여 조목을 적은 글을 바치고는 길가에 엎드려 자수했다. 옆 사람들이 체포하려 했으나 다산은 저지했다. 다산은 관청의 행정에 항의하는 태도가 오히려 관청이 밝은 행정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위적 지배를 부정하고 백성의 고
다산의 자는 미용, 용보, 귀농이고 호는 삼미자, 사암열수, 다산, 자하도인 태수 문암일인 등이며 당호는 여유당이다. 다산이 두 살 되던 해에 성호가 세상을 떠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산은 성호 이익의 길을 접하고 학문을 굳히게 되었다.
2) 개혁정치의 큰 뜻을 품고(1783-1800)
다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