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 장군
청산리전투는 좁은 개념으로 보면 1920년 10월 21일 김좌진이 지휘한 대한군정서 독립군이 화룡현 삼도구 청산리 백운평 계곡에서 독립군 토벌을 위해 침입한 일본군 동지대 소속의 산전연대(山田聯隊)를 크게 격파한 전투로 한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
김가진의 3남인 김의한과 결혼을 하게 되면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김가진은 구한말의 문신이었는데, 그와 함께 대한협회의 회장을 맡아서 무너져버리게 된 국권을 회복시키는 것에 앞장을 서게 되었으며, 대동단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는 등 여러 가지로 나라위하여 헌신을 계속해서 해오셨던 우국
김가진, 안경수, 권형진, 이원경, 이태용, 김학우, 조희연, 박용대, 조인승, 김종한, 어윤중, 김홍집, 김각현, 김윤식, 박정양, 오세창, 서동집, 이윤용 등으로서, 이들이 곧 1차 갑오개혁의 주도인물이 된다.
이들은 민씨 정권에 있어서 소외되던 인물들로, 이전의 주도적 관료층과는 다른 성향을 가지고
)가 설치되고, 영의정 김홍집(金弘集)이 회의총재(會議總裁)에, 그리고 박정양(朴定陽)·김윤식(金允植)·조희연(趙羲淵)·김가진(金嘉鎭)·안경수(安駉壽)·김학우(金鶴羽)·유길준(兪吉濬) 등 17명이 의원에 임명되어 내정개혁을 단행하게 하였다. 그뒤 개혁운동은 3차로 나뉘어 추진되었다.
(軍國機務處)가 설치되고, 영의정 김홍집(金弘集)이 회의총재(會議總裁)에, 그리고 박정양(朴定陽)·김윤식(金允植)·조희연(趙羲淵)·김가진(金嘉鎭)·안경수(安駉壽)·김학우(金鶴羽)·유길준(兪吉濬) 등 17명이 의원에 임명되어 내정개혁을 단행하게 하였다. 그뒤 개혁운동은 3차로 나뉘어 추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