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월당김시습의 생애와 문학관
1.1 김시습의 일생
김시습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설잠(雪岑)이고,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그의 이름 시습(時習)은 그의 친척이며 집현전 학사인 최치운이 그의 재주에 경탄
김시습의 다채로운 사상은 이미 사상 · 철학계에서도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금오신화』이 소설의 효시 작품으로 인정되어오며 문학사의 대상으로 작품론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회자되며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에 그의 비범치 않은 생애도 더불어 고찰해야 하고, 인물 김시습에 대한 이해
작품과 달리 특이한 서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주인공 박생과 염왕이 문답식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것인데, 이러한 방법은 김시습이 작품을 통해 현실세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표출하기 위한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서는 「남염부주지」의 서술구조를 살
대한 인물이었던 구준(寇準), 범중엄(范仲淹), 포증(包拯)도 모두 죽은 뒤에 염라왕이 되었다고 믿어왔다. 이렇게 속인이 염라왕이 된다고 믿는 전승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을 법하다. 김시습은 그러한 민간전승을 이용하여, 현실계의 부조리를 역설적으로 부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또,『용궁부연
받을 만큼 재질이 뛰어났다고 한다. 21세 때 삼각산 산사에서 독서하던 중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 하여 세상을 버리고 중이 된 이래 평생을 은자로 보냈다. 그는 일생 동안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살아왔는데, 그의 사상과 문학은 이 같은 고민에서 우러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