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이 개입함으로써 전쟁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압도당한 UN군은 북한으로부터 철수해 1951년 1월 4일 서울이 또다시 공산군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길어진 병참선에 미국 공군의 강렬하고 지속적인 공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중공군은 공세가 크게 둔화되어 UN군은
한국 근대사에 씻을 수 없는 훌륭한 업적을 나겼지만 반대로 동족 간의 전쟁을 일으켜 큰 과오를 남겼다.
- 유소년 시절
해방 이후 북한에서 50년 가까이 절대독재자로 군림하였던 김일성의 인성과 이념적 성향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유소년 시절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북한과 남한의 전면전으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을 때까지 계속된 전쟁이다. 이로 인해 양국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남한과 북한은 아직까지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류상 휴전중이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주로 이를
전쟁이다. 북한 김일성은 1946년부터 소위 '민주기지론'을 주장하여 북한을 공산체제로 만들고, 소련의 계획과 지원 하에 북한의 모든 역량을 전쟁준비에 동원하였다. 1945년과 1950년 초에 소련을 방문한 김일성은 남침계획을 설명하고 전차 및 야포 등의 지원을 스탈린으로부터 받아냈고, 중공군에 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