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만에 정착하여 1986 남양만 두레마을을 열고 지금까지 활빈교회와 두레마을에서 헌신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30여년 전부터 낮은 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그가 지나온 개척자의 삶과 신앙을 책으로 풀어냈다. 소설보다 더한 삶의 역정을 고스란히 풀어내며, 허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보다
남양만, 아산만, 삽교천 방조제 공사를 시행하면서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방조제 구조와 공법을 개발 적용하였다. 1980년대는 간척사업의 전성기로 영산강 하구둑, 대호 방조제, 금강 하구둑이, 1990년대 초에는 영암방조제가 건설되었다. 특히 1984년부터 절대농지의 개념이 도입되고 대체농지조성비를
남양만에 도착한 미군은 뱃길을 탐사하면서 북상, 물치도를 자국 함대의 정박지로 정하였다. 미군은 조선에 탐측 승낙을 일방적으로 통고한 뒤 서울의 관문인 강화도 해협 수로의 측량과 정찰을 목적으로 두 척의 군함을 파견하였다. 당시 밖으로 강력한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은 미군의 불
남양만에 도착한 미군은 뱃길을 탐사하면서 북상, 물치도를 자국 함대의 정박지로 정하였다. 미군은 조선에 탐측 승낙을 일방적으로 통고한 뒤 서울의 관문인 강화도 해협 수로의 측량과 정찰을 목적으로 두 척의 군함을 파견하였다. 당시 밖으로 강력한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은 미군의 불
남양만으로 집단 이주하여, 두레공동체를 설립했다. 2011년에 동두천에 두레수도원을 개원하고 같은 해 은퇴한 후, 2012년에는 두레수도원으로 이사를 했다. 2005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이 되었다. 그의 이력은 다소 좌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의 설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첫째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