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는 70세쯤에 은둔을 결심하고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갔다. 여정 중에 도림새(桃林塞)에 이르렀을 때 관윤(關尹)을 만나 그의 청을 받고 자기의 생각을 담은 글을 남겼는데, 그 글이 도덕경이다. 그 후 그는 진(秦)에 은거하며 30여년을 더 살다가 백세 가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중국 사상
주(周:BC 1111경~255) 수장실(守藏室)의 사관(史官)이었다. 사관은 오늘날 '역사가'를 의미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천문(天文)․점성(占星)․성전(聖典)을 전담하는 학자였다. 사마천은 노자의 벼슬에 대해 언급하고 난 뒤, 늙은 노자와 젊은 공자(孔子:BC 551~479)와의 유명한 만남에 대해 말했다.
해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 노자의 자연주의 사상
노자(老子)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연대의식이 피어나는 자연사회를 이상사회로 생각하였다. 자연사회의 중요한 조건은 신분계급이 철폐되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는 신분계급의 철폐는 단순한 제도의 폐지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문제였다.
공자의 위선을 질타했지만, 공자는 노자가 용처럼 뛰어난 인물이라 감복했다고 기록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와 비슷한 시대 무렵의 인물로 추정된다. 사마천이 사기를 편찰할 무렵에는 노자는 이미 전설화되어 있었고, '도덕경'도 다양한 시기와 다양한 인물을 거쳐 현재의 체
도인, 태식등의 호흡법, 양생의 법이 있고, 존사와 같이 신들을 뇌 속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는 관상법등이 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수행은 대체로 일상의 윤리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불교의 승려에 해당하는 종교인을 남자는 진인이나 도사, 여자는 여관이라 부르고, 제사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