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존재하느냐고. 그렇지만 아마도 마르크스가 분석한, 임노동과 자본축적간의 적대성의 핵심은 우리가 이미 비판한 것처럼, 객체화된 노동에 의한 인간과 자연의 재생산 요구와 산 노동의 압도일 것이다. 소유의 문제는 역사적 이론적으로 매우 복잡한 범주의 개념인데, 그 단순한
생산물량 뿐만 아니라 그 가치도 또한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증가야말로 자본 축적의 한 형태이며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리카르도는 이점을 간과한 것이다.
자본축적을 위해서는 잉여가치의 일부가 수입으로서 소비되어 버리지 않고 새로이 자본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한 공상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자본주의 경제가 산출하는 거대한 생산력의 밑바닥에 있는 알 수 없는 힘이 노동자 계급의 장래에 희망을 안겨 주면서 공상적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잊혀져 가고 있었다. 당시 공상적 사회주의는 리카도파 사회주의 진영에 머물러 있었고, 또
비생산성 때문에, 노예노동에 기반 한 대토지소유제는 토지에 긴박되어 자유이동이 금지되고 세습적 소작농제(colonus)인 정액금납소작제로 전화되었다. 이러한 토착농민제는 중세장원경제의 초석인 농노제의 기원이 되었다. 봉건적 발생사가 갖는 중요성은 아마도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갖는 중요성에
생산된 생산물의 개념으로 정의하고 국부의 증대를 위해서 분업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원천은 노동이라고 하여 노동가치설을 주장하였다. 이외에도 화폐이론, 분배론, 경제성장론, 재정이론 등 거의 모든 경제 문제를 다루었으며, 많은 경제학자들에게 논의의 출발점을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