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 [句] 麗
고구려(高句麗)는 그 선조가 부여(夫餘)에서 갈라져 나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시조는 주몽(朱蒙)인데, 하백(河伯)의 딸이 햇빛에 감응되어 잉태하였다’고 한다. 주몽이 장성하여 재주와 지략이 있자, 부여 사람들이 미워하여 쫓아버렸다. 이에 주몽은 紇斗骨城(흘두골성) 위서(魏書)와 북
高 [句] 麗
고구려(高句麗)는 그 선조가 부여(夫餘)에서 갈라져 나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시조는 주몽(朱蒙)인데, 하백(河伯)의 딸이 햇빛에 감응되어 잉태하였다’고 한다. 주몽이 장성하여 재주와 지략이 있자, 부여 사람들이 미워하여 쫓아버렸다. 이에 주몽은 紇斗骨城(흘두골성) 위서(魏書)와 북
달솔을 역임하였으니, 달솔이란 직책은 지금의 병부상서와 같으며 본국에서는 2품 관등에 해당한다. 증조부는 이름이 문대(文大)이고, 할아버지는 덕현(德顯)이며 아버지는 사차(沙次)로서, 모두 관등이 달솔에 이르렀다’라고 적혀있다. 흑치가문 대대로 중앙에서 5부의 책임자이며 지방에서는 5방의
달솔이 되었다. 달솔의 직은 중국의 병부상서와 같고 백제 본국에서는 이품관이었다. 증조의 이름은 문대이고 조의 이름은 덕현이며 아버지의 이름은 사차인데 모두 관등이 달솔에 이르렀다.
2.복신과 도침
복신- 부여복신과 귀실복신
은솔과 한솔관직에 있음- 지방군장
도침- 승군을 중심으로한 자체
달솔의 관등 소지자도 파견되기도 했지만 좌평의 관등을 가진 자가 장관으로 파견된 예는 없었다. 이렇게 볼 때 좌평 정무는 두시원악에 파견된 지방관이 아니라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세력자로 추측할 수 있다. 의자왕대에 대좌평 사택지적의 세력기반이 나지성에 있었다고 한 사실이 그 방증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