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 중국역사조선전- 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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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어사] 중국역사조선전- 주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고구려
백제
본문내용
高 [句] 麗
고구려(高句麗)는 그 선조가 부여(夫餘)에서 갈라져 나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시조는 주몽(朱蒙)인데, 하백(河伯)의 딸이 햇빛에 감응되어 잉태하였다’고 한다. 주몽이 장성하여 재주와 지략이 있자, 부여 사람들이 미워하여 쫓아버렸다. 이에 주몽은 紇斗骨城(흘두골성) 위서(魏書)와 북사(北史)에는 흘승골성(紇升骨城)로 나와있다
에 살면서 스스로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이어 고씨(高氏)로 성을 삼았다. 그의 손자 막래(莫來) 고구려 제 3대 대무신왕(大武神王)
가 점차 세력을 키우더니 부여를 쳐 복속시켰다. 막래의 후손 련(璉) 제 20대 장수왕(長壽王)
이 처음으로 후위(後魏)와 사신을 통하였다.
그 지역은 동쪽으로는 신라(新羅)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요수(遼水)를 지나니 동서가 이천리요, 남쪽은 백제(百濟)와 인접하고 북쪽은 말갈(靺鞨)과 이웃하니 남북이 천여리이다. 수도는 천양성(千壤城)으로 그 성은 동서가 육리이며, 남쪽으로는 패수(浿水)에 닿아 있다. 성 안에는 오직 군량과 무기를 비축하여 두었다가 적군이 침입하는 날에는 곧 성 안으로 들어가서 굳게 지킨다.
왕은 따로 그 곁에 궁실을 마련하였으나 평상시에는 거기에 살지 않는다. 그 밖에 국내성(國內城)과 한성(漢城)이 있으니, 별도의 도읍지이다. 그리고 다시 요동(遼東)과 현토(玄菟)등지에 수십 개의 성이 있다. 모두 궁사(宮司)를 두어 관할 통치하였다.
가장 높은 벼슬로는 대대노(大對盧)가 있고, 그 아래에 태대형(太大兄), 대형(大兄), 소형(小兄), 의사사(意俟奢), 오졸(烏拙), 태대사자(太大使者), 대사자(大使者), 소사자(小使者), 욕사(褥奢), 예속(翳屬), 선인(仙人), 욕살(褥薩)의 모두 열세 등급이 있어 안팎의 일을 나누어 관장한다. 대대노는 세력의 강약에 따라 서로 싸워 이기면 빼앗아 스스로 되고 왕의 임명을 거치지 않는다.
그 나라의 형법은 모반한 사람과 반역자는 먼저 불로 지진 다음 목을 베고, 그 집은 적몰하였다. 도둑질한 사람에게는 도둑질한 물건의 10여 배를 징수하였다. 만일 가난하여 징수할 것이 없거나 공적, 사적으로 빚을 진 사람에게는 모두 그의 아들이나 딸을 노비로 주어 보상할 수 있게 하였다.
남자는 소매가 긴 적삼에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흰 가죽띠와 누런 가죽신을 신는다. 그들의 관(冠)은 골소(骨蘇) 북사(北史)에는 蘇骨로 되어 있다
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자주색 비단으로 만들었고 금은으로 얼기설기 장식하였다. 벼슬이 있는 사람은 그 위에 새의 깃 두 개를 꽂아 뚜렷하게 차이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