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예무역의 시작
근세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아프리카의 흑인을 노예로 사들여 아메리카 대륙의 농장주나 무역상에게 팔아넘긴 반인륜적 무역이다. 이른바 중세의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사탕수수와 담배 등의 대농장 재배가 성행
무역의 몰락을 야기하여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서양연안의 국민은 15세기 말에 새로운 세계무역과 식민지 활동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역사적 전환의 주인공역할을 다하게 되었다. 이는 서유럽제국의 상업활동, 나아가서는 경제생활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르네상스를 근세 유럽
1.4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의 철기 사용
아프리카의 암석은 너무나 오래되었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은 주로 광석으로 이루어져있다. 구리는 부를 과시하는 상징이 되었고 철은 철광성의 형태로 여기저기 많이 바견되어 주요 실용적인 금속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부 아프리카와 남부
좌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아프리카의 정체성과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서 디우해전과 노예무역, 베를린 회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각각의 사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당 사건이 아프리카의 운명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노예무역이 아메리카 대륙 전역을 걸쳐 대규모로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에스파뇰라가 노예무역의 중심지이였다. 바하마에서 에스파뇰라로 향하는 뱃길은 주요 노예무역 항로 중 하나였는데, 노예선상에서 질병과 배고품으로 죽어간 인디오들은 바다에 수장되었고, 그렇게 죽어간 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