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던 곡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대신 스스로가 창작한 노래를 대중가요의 새로운 문화
로 채택해 갔다. 이를 통해 혁명성이 결여된 1970년대의 노래 대신 창작 민중가요 즉,
군가 풍의 행진곡과 가곡 스타일의 서정가요가 6월항쟁 시기의 가장 큰 유행 형태로
자리 매김 하였다.
금지곡의 양상도 달라졌다. 5·16 직후에는 부패 청산과 새 시대 건설이란 정책 아래 대다수 대중가요에, 유신 이후에는 민주화나 사회 비판적 노래에 금지곡 딱지가 붙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1970년대 많은 금지곡이 가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듣는 이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나왔다는 것. 송창식의
등의 오락, 화려한 옷차림 등을 거부했고 지배 이데올로기가 침윤되어 있는 대중문화를 전격 거부하였다. 이러한 운동권 집단이야 말로 민중가요가 대중가요와 다르게 자신들의 독자적인 유통구조를 가지고 형성 계승 할 수과 같은 속도로 이러한 것들을 도외시 하여 확실한 분파가 생기는 것이다.
대중문화 상품의 생산은 최대 판매와 최대 이윤의 확보라는 논리 속에서 이루어졌고 TV 프로그램의 편성은 시청률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70년대 초 한때 대중문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청년문화 선풍이 긴급조치 시 대와 함께 맥이 끊기면서 대중음악계도 왜색 가요의 싸구
대중음악문화의 주류를 담당해 왔던 트로트음악을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환골탈태 시킨 제6공화국의 문화정책은 그러한 계승의 단적인 예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측면 이외에도 언어의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용어는 타당하지 않다. 1990년대에 이르러 가사가 없는 대중음악, 즉 연주 음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