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빛을 줄 존재가 되어 주길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벌써 1년이 훌쩍 넘어간 대통령의 모습은 우리의 기대에 턱없이 모자라기만 했다. 경제는 불황에 빠져 있고 대통령은 과격하고 무책임한 발언으로 지탄을 받았다. 그러다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져 정치계를 혼란에
정부는 노무현대통령의 분열주의 포퓰리즘에 의해 보수 야당세력과의 철저한 적대적 관계에 돌입하게 되었고 국정운영에 있어 위협을 감수해야 했으며 대통령탄핵이라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야당세력은 탄핵이라는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정치적 공세와 더불어 참여정부가 추진한 4대법 개혁에도
사건 에 이르기까지 70여건에 달하는 탄핵소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는 헌법시행 이후 13건의 탄핵소추가 이루어지고, 유죄의 결정으로
피소추자들이 공직에서 파면된 경우도 4건에 이르고 있다. 비록 1표 차이로 부결되기
는 하였으나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까지 행해진 사례가 있다.
시위 기간 동안에 전국적으로 약 1,700만여명의 국민이 참여하고, 촛불의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순히 정권교체라고 하는 정치공학적인 의미만으로 축소, 해석을 하기에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촛불시위를 통해서 드러난 국민들의 요구사항이 단순하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또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성향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가 구분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한국 사회 내의 보수와 진보라는 균열구조가 대두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갈등세력 간의 힘의 수준이 대등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 일변도의 한국 사회에서 진보의 목소리가 보수세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