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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세기 초 동아시아 국가 정세
6세기 초 한반도의 정세는 고구려가 우위를 잡고 있었다. 이 시기 고구려는 중국대륙을 둘로 나누고 있던 북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남진정책으로 한강유역을 획득하고 백제와 신라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한강유역을 빼앗긴 백제는 웅진천도 이후 한성 함락
사비천도
“사비는 물이 차오르는 죽음의 땅이다.”
“한강 유역을 다시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와 인접한 웅진을 도읍으로 정해야한다.”
성왕은 지도를 거꾸로 보며 “백제는 한반도의 끝자락이 아닌 시작이다.
우리의 상대는 신라와 고구려가 아닌 더 넓은 바깥세상이다.” 라며 사비 천도
[대통사를 찾아서]
-대통사는 오바마를 위한 교회인가?-
서언
공주시 반죽동에 가면 대통사(大通寺)라는 절의 터가 남아있다. 그런데 이 절터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세웠는냐하는 기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언제·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건립되었는가하는 보다 복잡한 문제에 이르
백제시대 때 봉황산 밑에 한 스님이 살고 있었다. 꿈에 산신령이 현몽하여, “큰 절을 봉황산 밑에 세우되 정성껏 기도를 올려야 한다.”고 하였다. 스님은 봉황산에 제단을 차려 놓고 매일 밤 목욕재계를 하며 백일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웅대한 대통사라는 절을 지었다.
대통사의 창건연대
삼국유사 ㄱ. 또 대통 원년(527) 정미에 양나라 임금을 위하여 웅천주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대통사라 하였다. 웅천은 곧 공주이니, 그 때는 신라에 속한 까닭이다.ㄴ. 그러나 아마도 정미년은 아닌 듯하며, 바로 중대통 원년 기유년에 세웠을 것이다.
무령왕릉 지석
영동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