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냐 다케시마냐」, (서울 : 다다미디어, 1996), 99p
라는 기록과 함께 울릉도의 지형과 물산을 상세히 기재하고 있다. 이 책의 ‘은기국 송도’라는 구절이 일본인들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애용되고 있다. 이시영, “독도영유권 분쟁에 관한 연구” (한남대학 지역개발대학원석사논문),
기록이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강원도 울진현 소속으로 뚜렷하게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숙종실록에서는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확인한 것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1897년(고종34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개칭한 후에도 울릉도에 대한 일본인
일본 지각이 한반도 대륙으로부터 분리돼 남동방향으로 이동하기 히작하였으며 이때 최초의 동해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만년전부터 약1천만년 전 사이는 동해의 가장 활발한 성장기로서 일본이 현재 위피로 이동되었다. 독도나 울릉도는 동해의 완성기 후반부에 생성되었음이 그
일본에서는 독도 문제와 맞물려 국제 정세의 급변과 동아시아 안보정세의 변동, 국내 정치의 지각 변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우경화 추세 일본 내 보수 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상.
'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세력은 독도의 영유권 주장 이외에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것이 일관된 입장" 등의 독도에 관한 망언들을 발표하였다. 한국이 독도를 신라 시대부터 지배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처럼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독도 문제에 관해 '조용한 외교'를 펼쳐 왔으며 독도가 울릉도와 똑같이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