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pp. 3-4.
본 보고서는 이러한 한국의 민족개념을 기반으로 한 독립운동의 방법론에 대한 조사이다. 한국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이래 1910년 일본에게 완전히 병합 되면서 일본의 식민지국가가 된다. 하지만 한민족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
임시정부로서 국내의 국민적 기반은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었다. 따라서 임시정부는 수립직후부터 국민적 기반을 획득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임시정부는 교통국과 연통부, 선전대를 직할조직으로 삼아 국내의 기반을 확대해 갔으며, 한편으로는 3·1운동의 열기 속에서 국내에서 결성된 수많은 독립운
독립운동으로 발전시킬 필요성도 있었다. 3·1운동이 전개되던 3월과 4월에 국내외 각지에서 모두 8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실제적인 조직과 기반을 갖추고 수립된 것은 노령·상해·한성의 임시정부였다. 노령에서는 국내에서 3·1운동이 발발하자 전로한족회중앙총회가 대한국
독립운동가와 유학생들이 규합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조직한 단체로‘동주공제(同舟共濟: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배를 타고 피안에 도달하자)’를 표방하면서 동제사를 조직하였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상당한 역할을 수행해오다가, 1922년 7월 신규식의 죽음을 전후한 시기에 해체된 것으로
임시정부가 3.1운동의 산물이고, 둘째 우리 역사에서 수립된 최초의 민주공화정체(民主共和政體)이며, 셋째,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법통성을 가지고 있고, 넷째,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지휘해 나가는 과정에서 비록 매우 약화된 시기를 겪기도 했으나, 민족의 염원을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