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pp. 3-4.
본 보고서는 이러한 한국의 민족개념을 기반으로 한 독립운동의 방법론에 대한 조사이다. 한국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이래 1910년 일본에게 완전히 병합 되면서 일본의 식민지국가가 된다. 하지만 한민족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여
을 이룩하여, 세계무대에서 열강과 당당하게 맞서 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당시 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었던 봉건적 요소를 척결하고 서구의 문물을 과감히 도입하고자 하였다. 개화 사상의 연원은 이용후생을 주장하던 북학사상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지만 청의 양무운동(洋務運動) 및 일본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것이다. 1931년 4월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 원칙으로 발표한 삼균주의를 구체화한 내용이라고 했다. 후일 국무위원회의 결의만으로 효력이 있느냐의 여부로 의정원에서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삼균주의가 성립한 시기는 1930년 한국독립당 창립시기와
임시정부를 대상으로 상이한 결론이 도출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 조는 특히 시비가 엇갈리는 상해시기 임시정부(1919~1932)를 중점으로 그들의 활동과정을 알아보고, 같은 시기 식민지를 겪고 있었던 다른 나라의 독립운동 과정을 비교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다시 돌아볼 기
독립운동의 최고기관으로서 임시정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또 선언에서는 한일병합을 융희 황제(순종)의 주권포기로 단정하고 대신 주권불멸론(主權不滅論) 즉 융희황제가 주권을 포기한 것은 국민에게 주권을 이양한 것이라는 독특한 국민주권론을 바탕으로 민주공화제와 법치주의를 지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