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제 1차 농민전쟁의 전개
19세기 후반 봉건정부의 부패와 외세의 침략 아래 신음하던 우리 농촌의 현실 속에서 동학의 교조신원운동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崔濟愚)가 처형된 뒤 그 억울함을 벗고 동학신앙의 자유를 얻으려고 동학교단측에서 벌인 운동.
은 동학교인들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염원
거둠.
그 외의 다른 핑계로 세금을 거두어 들임.
농민군의 4대 강령
① 사람을 죽이지 말고 물건을 해치지 말라.
② 충효를 온전히 하여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라.
③ 왜양(倭洋)을 축멸하고 성군의 도를 깨끗이 하라.
④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로 진격하여 권귀(權貴)를 멸하라.
정읍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간 곳은 ‘동학혁명기념관’ 이었다. 생각보다 교통편이 불편해서 택시를 이용해야 했는데 무척이나 비싼 요금 탓에 구석구석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없었다. 여유가 있으면 꽤나 여러 군데를 돌아보고 선운사나 내장산 정도까지 들려보려고 했었지만 경제적 사정으로 인하여
동학혁명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농민이 주측이 된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은 서기 1894년 동학(현 천도교의 전신) 세력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대규모 민란으로, 동학농민 운동, 동학농민전쟁, 갑오 농민전쟁, 동학란(東學亂)이라고도 한다. 조선 관군(官軍)과 일본군의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