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잇따른 침략으로 인근 제지역을 병합한 ‘제민족의 감옥’에 불과했으므로, 소수민족의 소요가 광범하게 확대되어 피압박민족의 해방운동이 격화했으며, 혹심한 경제공황과 경찰의 탄압은 농민봉기를 더욱 자극하였다. 그리고 주요 도시에서는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선동으로 체제에서 소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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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외부로부터의 문화에 개방적이었던 러시아는 공산주의 종주국이 된 이후 계속해서 자신의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려 했던 데에 반해 중국은 독자적인 공산주의 노선을 선택한 이후에도 자신의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어떠한 제스쳐나
체제를 지향하는 쪽으로 지양된 것이다. 위의 사실은 영국ㆍ프랑스가 일찌감치 근대화를 통하여 유럽의 중심국으로 발전한 것과 비교하여 볼 때 독일이 왜 근대사에서 후발국이 되었는가를 설명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상 이미 ‘아래로 부터의 개혁’을 통하여 산업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던 영
것은 독일의 근대화 과정은 아래로 부터의 근대화가 아닌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에 의한 관세동맹과 1871년 비스마르크 등장으로 인해 통일된 독일이 만들어 졌다. 즉,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그 발전의 고조를 이루는 시점에서 독일은 뒤 늦은 산업화 즉, 근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체제를 합리화함으로써 북한사회를 통제하는 폐쇄적인 이데올로기라는 점이다. 북한에서의 정치란 “수령의 위대한 혁명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투쟁과 활동”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군정치의 핵심 정신인 수령결사옹위정신이 구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인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