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와의 전쟁을 구실로 남하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녀는 두 차례에 걸친 투르크와의 전쟁을 통해 흑해 연안과 크림 반도를 점령하였다. 특히 1744년에는 쿠추크카이나르지 조약을 통해 투르크 내의 그리스 정교도 보호권과 보스포루스 해협의 자유 항해권까지 얻어 냈다. 그 무렵 러시아 안에서는 카
,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이탈리아 등의 열강들도 뒤 따라 내륙으로 진입하기 시작했고 결국 아프리카는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광할한 땅과 자원을 가진 아프리카가 최고의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유럽인들의 손에 들어간 것은 그 뒤 인류를 전쟁의 구렁텅이에 밀어넣는 결과를 가져왔다.
크림전쟁이란 1854년에서 1856년에 걸쳐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지금의 터키),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사르데냐 연합군이 크림반도와 흑해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이다. 배경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크게 종교문제, 지정학적인 이유, 국가 간의 경제적 이득을 위한 이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
러시아에서는 전제정치 하에서 농노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지배계층도 농노제의 폐단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쉽게 개혁할 수 없었다. 농노제를 폐지할 경우 전제군주제의 토대를 이루는 귀족계급이 몰락하고 혁명이 초래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크림전쟁(1853년~1856년) 이후 알렉산드르 2세가 농
러시아의 민속음악까지도 서양풍의 음악으로 변질되기를 강요받은 러시아는 19세기가 되어서도 음악에 있어서 이국음악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러시아 음악은 국민주의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크림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