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거부권을 가지며, 민회의 소집도 집정관의 권한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로마는 대외적으로 팽창을 해나가야 했기에 군대의 다수를 차지하는 평민의 위치가 점차 중요성을 더해가던 때였다. 따라서 초기 공화정하의 로마는 정복전쟁의 시기임과 동시에 평민과 귀족간의 신분투쟁의 시기였다.
근본적으로 다른 두 세계가 고대의 마지막 수세기에 걸쳐 서서히 해체되면서 소리 없이 융합되었다. 그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고전세계의 문명 전제를 낳은 원래의 모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 ․ 로마적 고대는 언제나 도시를 중심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
투쟁이 일단락되었다.
이와 같이 오랜 동안의 평민들의 권리주장 운동은 전환기인 5세기에서 4세기까지는 완전히 그 목적이 달성되기에 이르렀다. 커다란 내란 없이 평민과 귀족과의 충돌은 해결되었는데, 이것은 정치에 있어서의 실제적 지혜와 양식을 존중하는 로마인들의 특성의 일면이기도 하다.
로마 원로원과 인민, 또는 로마 공화국은 고대로마 시대에서 기원전 510년경 왕정을 폐지하고 이후 450여 년간 로마 정치를 이끌었던 공화정 정체와 그 정부를 일컫는다. 로마 공화국은 권력의 분리와 견제와 균형 원칙에 중점을 둔 복합적인 정치 체제였다.
서임권 투쟁이란 세속 군주가 관행적으로 행
평민들이 전후 약속이 취소되자 로마 근교의 성산에 모여 귀족에 항거한 사건
병사회
∙BC 5세기 후반에 도입된 팔랑크스의 전술과 이에 따란 시민군의 새로운 편제를 바탕으로 성립
∙토지를 가진 로마 시민을 신분 구별없이 재산정도에 따라 구분(군사조직을 토대로 한 시민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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