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제도나 문화에 의하여 부자유스럽고 불행한 상태에 빠졌으며, 사악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다시 참된 인간의 모습(자연)을 발견하여 인간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인간 본래의 모습을 손상시키고 있는 당대의 사회나 문화에 대하여 통렬한 비판을 가하였으며,
아버지가 나를 껴 안을 때마다 당신의 깊은 탄식과 발작적인 포옹에 서 애정의 표시와 뒤섞인 사무치는 아쉬움이 깃들 어 있음을 느꼈다.” 어머니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어린 루소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루소를 붙잡아 준 것은 독서였 다. 루소는 시계
보냈다. 한때 프랑스 궁정의 역사 편찬관이 되었고 이어 프리드리히 국왕의 초청으로 프로이센에 가서 《루이 14세의 시대》(Le Si?cle de Louis XIV, 1751)를 완성하고 그 후 여러 곳을 전전하였다. 이 장에서는 프랑스 언어문화4) 정치 사상적인 측면에서 루소와 볼테르의 차이점에 대해 서술하기로 하자.
루소 개인의 생활은 그의 사상과는 달리 본받을 점이 거의 없습니다. 루소가 열 살 때 루소의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그 후 루소 자신도 가출과 방랑생활을 하며 모진 생활을
하였습니다. 루소는 나이 50세에 '에밀'을 출간하여 큰 사회적 반응을 얻었지만, 그로부터 2년 뒤에는 루소가 자녀 5명 모
있었지만, 험준한 자연 경계로 제네바는 유일한 공화국이었다. 루소의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사망해 시계 수리공인 아버지가 육아를 맡게 되었다. 낭만적이고 변덕스러운 아버지는 루소에게 자연과 독서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 주었으나 루소는 어머니를 일찍 여읜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다. 열다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