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나가사키 출신 의사 시볼트가 '일본지도'를 작성.
시볼트는 '다케시마'(현재의 울릉도)와 '마쓰시마'(현재의 독도)라는 2개의 섬의 존재를 인지.
한편, 유럽의 지도에는 서쪽에서부터 '아르고노트 섬'과 '다줄레 섬'이라는 2개의 명칭이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음.
이를
마쓰시마’로, 반대로 울릉도가 ‘다케시마’나 ‘이소다케시마’라 불렸다. 다케시마와 울릉도의 명칭에 대해서는 유럽의 탐험가등에 의한 울릉도 측위의 잘못으로 일시적인 혼란이 있었으나, 일본이 ‘다케시마’와 ‘마쓰시마’의 존재를 옛날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것은 각종 지도와 문헌으로도
마쓰시마라고 부르다가 이때 두 섬의 명칭을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그 이유를 외국인 지볼트(Siebold)의 지도에 잘못 표기되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동시에, 일반적으로는 리앙꾸르라는 외국 명칭을 사용해 온 사실 등으로 들고 있으나 고유의 영토에 대한 명칭 혼동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마쓰시마(松島)라고 불렸습니다. 이는 제한된 관계자 이외에는 알려지지 않았고, 막부 당국도 1696년 울릉도 도해금지(渡海禁止) 명령을 내릴 때까지 존재를 알지 못했다.
②한국이 오래 전부터 다케시마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팸플릿에서 삼국사기(1145년)에 우산국이었던 울릉도가 512년
마쓰시마나 아마노 하시다테등의 명승지 풍경을 본떠 정원을 만들었다. 무로마치 시대에 발달한 가레산스이 정원은 선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종교적, 철학적 세계를 옮겨놓은 것이든, 와카의 명소를 옮겨놓은 것이든 이들 정원은 모두 현존하는 명소의 풍경을 압축, 결정시킨 이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