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라까의 외교
빠세이(Pasai) 또는 아루(Aru)로부터 온 사절들은 모든 궁중악사들에 의해 영접을 받았고, 서신과 선물은 코끼리가 운반하도록 했으나, 다른 나라들의 사절들은 단지 궁중악사 중 일부만이 환영을 했으며, 그들의 서신과 선물은 말로 운반하도록 했다. 왕실의 청중을 위한 좌석 배치도 행해
멀라까의 무역항을 통해 인도네시아와의 무역뿐만 아니라 그 밖의 현지무역도 통제할 목표를 갖고 있었다
포르투갈인은 1511년 멀라까를 점령, 그들의 동남아시아 거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멀라까로 항해는 강력한 아쩨 술탄왕국의 도전으로 인해 항상 불안
이러한 상황은 동인도회사를 중심으
④ 말레이 술탄왕국하의 멀라까 영토의 일부분이었던 사실에 의거하여 포르투갈령 멀라까의 속국이 되었던 나닝과 름바우에 대한 지배권 주장.1641년 조약을 통해 나닝과 름바우의 곡물과 식량, 특히 쌀과 가축의 정기적인 유입에 대해 그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10퍼센트의 세금을 부과.1643년, 1675년 두
(2) 스리비자야 왕국의 성립
▶ 7세기 중엽 멀라까 해협 무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왕국
▷ 바땅 하리(Batang Hari) 어귀쪽 현 잠비(Jambi)의 멀라유(Melayu),
▷ 현 빨렘방(Palembang)의 스리비자야
▷ 성립과 함께 멀라유 압도
▷ 지배력 확장
☞ 수마뜨라섬 동부해안 ~ 멀라까 해협 ~ 말레이반도
서부 자바의 드막 왕국
16세기 초반, 가장 중요한 이슬람 왕국
- 마자빠힛의 후계국
-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중국인 무슬림에 의해 세워짐
→ 대를 이은 통치자 뜨렝가나(Trenggana)
- 중서부 자바의 많은 지역에 세력을 떨침
뜨렝가나(Trenggana)
- Kediri, Tuban, Madiun, Malang 정복
- 1505-1518년, 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