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가 확립되었다. 개인지배체제로서 어느 개인이 군통솔권을 쥐는 것은 당․군 관계에 있어서 안정적인 문민통제를 유지하면서 문민의 분열을 막을 수 있는 것이며 북한은 이를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북한에서의 군은 영토 및 체제보존의 임무보다 통치자와 당의 군대로서 혁
당의 정책이 결정되었다. 물론 스탈린 시기 소련공산당을 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소련은 뒤이어 수정주의 노선을 걸으면서 스탈린 식(式)의 일인지배를 배격해왔다. 중국도 기본적으로는 중앙당의 정치국을 중심으로 집체적 토론과 협의에 따른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김
당에 속하되 북한 지역에 중간 기구로서 ‘북조선 분국’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 1945.10.10-13일간 평양에서 ‘서북 5도당 및 열성자대회’가 비밀리에 개최되어 지도기관을 선출했는데 분국 책임비서에는 국내파인 김용범, 2명의 제 2비서에는 국내파 오기섭과 연안파 무정을 선출했다. 당시 김일
지도자들이 당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중앙위원회나 정치국원의 자리에 앉을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장의 고위간부들은 정치위원이나 장의 군사위원회의 주석이나 부주석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당군공존’ 원칙의 중요한 측면은 바로 고위층에 있어서의 “상호중첩”관계라
지도부는 정치적으로 이를 최대한 이용하여 반대파를 제거하는데 간첩죄와 반종파투쟁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한국전쟁당시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가 상당히 강조되었고 한국전쟁 이후에도 분단체제와 미국과의 군사적 긴장감을 이용하여 북한지도부는 정치적반대파의숙청과 강력한 지도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