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민해방군은 직업주의적 특성을 갖는 당군(party-army)”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또한 그는 논문에서 과거 유격전과 내전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의 민군관계의 중요한 양상은 “최고위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 정치적 지도자와 군사 지도자들이 서로 밀접하게 중복 또는 중첩되어 왔다는 것
군을 창설한 사례, 문혁 기간에 득세한 홍위병들을 제압하고 정치적 안정을 찾기 위해 정규군을 투입한 사례 등에서 당군이 중국정치에 있어서 가지는 역사적 함의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당과 군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과거부터 오랜 학문적인 전통을 갖고 있지 못하다
군이 사회를 재정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중국군은 정치에서의 막강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군의 영향력은 등소평 집권 이후 개혁개방을 거치며 점차 감소하게 된다. 등소평은 베트남과의 중-월 전쟁의 실패 이후 군의 현대화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군의 효율성과 전투
군사비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현대화 추진중점을 신 전력 수행을 위한 장거리 작전능력을 가진 무기․장비의 확보와 새로운 전쟁 양상에 맞는 합동작전 및 기동성 위주에 두고 무기장비의 질적 현대화를 통한 군사력 증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군이 본격적으로 군현대화를 추진하기 시작한
중국이 경제발전을 최우선 국가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실리외교를 추진하면서 양국간 점차적 괴리가 나타나게 되었다. 1992년에는 한∙중 수교로 중국과 한국간에 경제적, 문화적, 정치군사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북한은 상대적으로 고립되었고, 북∙중 관계는 상당한 정도로 악화되었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