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의 공을 세운 ‘더글라스 맥아더’ 라는 인물과 그의 동상이 한국의 어떤 시대적 흐름과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동시에 이미 뜨거운 감자로써 문제시 되고 있는 맥아더장군동상철거에 대한 논란을 지그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Ⅱ. 본론
1.맥아더장군
맥아더
[Douglas MacArthur, 1880.1.26 ~ 196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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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맥아더가 은인이라고?”
글분석
① 현상
- 맥아더장군동상이 인천의 자유공원에 46년 째 세워져 있는 상황
- 120년 간 대한민국에 외국군대가 꾸준히 주둔하고 있고 이를 당연시 여김
- 맥아더장군 또한 구국의 은인으로서 칭송받음
미국(39%)을 꼽는 한국인이 더 많았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더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조선일보』, 2004년 1월 13일 참고.
결국 ‘맥아더동상’문제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즉, 동상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맥아더 개인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거니
대한민국국군의 주적은 어디까지나 북조선의 인민 무력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우는 약간 다른데, 북조선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남아있던 주한미군을 남한에 대한미국의 침략으로 간주, 북조선 인민 무력의 명분상 주적은 미군이었다. 현대 대표적인 시각은 네
맥아더가 지휘하는 부대들은 공세를 전환하여 북쪽으로 재진격했다. 1951년 4월 11일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장군이 상부의 명령을 거역하고 제한전을 수행하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사령관직에서 해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을 떠난 이래 처음으로 귀국한 맥아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