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스트로 변모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의 회고담 중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고호의 <수차(水車)가 있는 가교(假橋)>를 처음 보고 두 눈알이 빠지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낀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 느낀 유럽 회화에 대한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계미술전집을 구하며, 거기 침몰하는 듯
뉴욕시절의 작품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무제, 1966
달을 휘감은 구름
꽃을 감싼 덩굴풀
달을 솜이불 삼아 청하는 깊은 밤
꽃을 모시이불 삼은 나른함
해맑은 미소가 꿈꾸던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
별보다 많은 하루
은하수 가득했던
어느 날 밤의 이야기
1955년에 처음으로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시회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거식증에 걸리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된다. 그렇게 만든 작품은 뉴욕에 있는 모던 아트 뮤지엄에 소장되었다. 그는 통영으로 이주한 후, 지금까지 회자되는 수많은 작품을 남기게 된다. 이
회화를 대표하는 자유로운 화가 잭슨 폴록의 부각은, 추상미술표현주의’라는 회화의 등장과 함께했다. 새로운 시대적 미술로 대두된 '추상표현주의'는 1946년 3월 비평가 로버트 코츠(RobertCoates)가 한스 호프만(Hans Hofmann1880-1996)의 전시회 리뷰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반항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의미로
지용은 술을 즐겼고 고집이 상당히 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지용은 시를 암송하는 것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지용이 천향원 이라는 요리집에서 기생의 머리채를 잡고 호통을 치다가 요리집 남자주인공에게 봉변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최재서가 택시를 잡아서 모윤숙과 최정희를 밀어 넣고 도망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