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참언(讒言)을 막아 양궁 「兩宮」, 선조가 거처하는 왕궁과 입후한 명종 인순왕후가 거처하는 궁을 말함.
(兩宮)을 친근하게 하는 일이옵니다. 신은 들은 바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자(慈)라 하고,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효(孝)라고 합니다. 이 효(孝)․ 자(慈)의 도(道)
퇴계의 무진육조소와 율곡의 동호문답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두 성리학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한 글이다. 17세기 당시는 사림이 득세를 해나가던 시기였으며, 두 사람의 글 모두에서 당시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유교의 근본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다.
퇴
6. 사단칠정에 관한 논의 과정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사단과 칠정은 본래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이 서로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은 권근의 ‘입학도설’에서부터 시작한다. ‘입학도설’ 가운데 ‘천인심성합일지도’를 보면, 마음에 리와 기라는 두 개의 원천이 있는 것으로 그
무진육조소>를 올렸다. 선조는 이 소를 천고의 격언, 당금의 급무로서 한 순간도 잊지 않을 것을 맹약하였다 한다. 그 뒤 이황은 선조에게 여러 책을 진강(임금 앞에서 글을 강론함)하였다. 이듬해 69세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번번히 환고향을 간청하여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환향 후 전
Ⅱ. 본론
1.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
1) 퇴계 이황의 생애
(1) 출생
퇴계의 성은 이, 이름은 황(李滉 : 1501~1570),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청량산인(淸凉山人) 등이며, 관향은 진보(眞寶)이다. 퇴계는 1501년(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