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근본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다.
퇴계의 무진육조소는 왕에게 간언하는 내용으로 6가지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적으로 유교의 근본을 되살려 유학으로서 정치를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첫 번째 항에서는 계통을 중시해 인효를 온전하게 할 것을 말하고 있다. 효는 백행의 근원
과감히 주장한 경세가이기도 하였다. 동호문답, 성학집요 등은 그의 대표적인 저작들이다. 그의 학통은 조헌, 김장생 등으로 이어져서 기호 학파를 형성하였다.
이황은 주자서절요, 성학십도 등을 지어, 주자의 이기 이원론을 더욱 발전시켜 주리 철학을 확립하였다. 그의 사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한국 도학의 큰 흐름을 이루었다.
3) 한국성리학 융성, 퇴계와 율곡의 출현
- 16세기 중반 이후 한국 유학은 큰 전환을 보게 된다. 조선 전기의 도학적 전개에서 인성론적(人性論的) 전개로의 전환이 바로 그것이었다. 거듭된 사화(士禍) 조선 시대에, 조신(朝臣) 및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
성리학의 중심개념인 태극·천명·이기·음양·오행·사단·칠정 등의 문제를 하나의 도표 속에 요약하고 이들의 상호관계와 각각의 특성들을 평이하게 설명하고 있음. 특히 이 도설은 후대에 이황과 정지운의 『천명도설』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며 성리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됨.
『입학도설(入
성리학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였으며, 송대의 성리학이 이 땅에 전래된 지 300년 가까이 되어서였다. 즉, 이때 한국 유학의 쌍벽인 이퇴계(李退溪)와 이율곡(李栗谷)이 태어났으며, 서화담(徐花潭)이항(李恒)김인후(金麟厚)기대승(奇大升), 그리고 성혼(成渾) 등도 모두 같은 시대의 성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