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붕당(朋黨)
한국에서는 조선 중기에 성립되어 서로 대립하고 공존하면서 정치를 이끌어 갔다. 지방에서 성장한 사림파(士林派)는 15세기 말 이후 중앙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훈구파(勳舊派)로부터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뒤 중앙 정계를 장악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과
문생(門生)의 관계를 맺어 일생을 통하여 그 예(禮)가 부자간과 같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학벌이 형성되어 출세의 배경이 되었다. 의종 이후 과거제도는 문란하여져 69년 공민왕 때 이색(李穡)은 지공거 이인복(李仁復)과 논의하여 원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향시(鄕試)감시(監試:會試)전시(殿試)의 3단
문생(門生)인 신천의 강력한 주장으로 문묘에 종사(從祀)되었고, 먼 훗날 조선 중종 때에는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백운동(白雲洞)에 그의 사묘(祠廟)를 세우고 서원을 만들었는데, 1549년(명종 4) 풍기군수 이황(李滉)의 요청에 따라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명종 친필의 사액(賜額)이 내려질 정도
문생제(座主⋅門生制)와 국자감시를 없앤다. 감시는 고려시대의 국자감시요, 조선시대의 진사시이다. 주자학을 신봉하는 신진 유학자들은 사장을 배격하고 경학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이들이 집권하게 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사장시험인 진사시보다 경학시험인 생원시를 중시하게 되었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