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녹동서원
영암에서 최초로 건립되었고 또 영암 유일의 사액서원인 녹동서원은 후일 영암에 유배되어 온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농암 김창협(農岩 金昌協) 부자가 추배되기는 하였으나 본래는 연촌 최덕지를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된 존양사라는 전주최씨 가문의 문중사우였다. 즉 녹동서원의
무양서원이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무양서원은 1927년에 탐진최씨(耽津崔氏) 문중에서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 세운 서원이다. 고려 인종 때의 어의(御醫)로 탐진최씨의 시조인 장경공(莊景公) 최사전(崔思全, 1067∼1139)을 주벽으로 그의 후손인......<중 략>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됨. (총 47 곳 중 하나.)
1969년에 서원과 함께 이씨 문중소유인 임야 및 전답 19필(324.945m2)이 사적 170호로 지정되면서 서원이 성역화 됨.
1970년에 정부의 특별배려로 보수정화와 유물전시관인 옥진각을 신축함.
도산서원 관련 인물
퇴계이황
율곡 이이와
있으므로, 인수문고는 도산서원보다 거의 2 배 이상 책을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인수문고는 장서의 양뿐만 아니라, 어느 책도 책의 권수가 하나도 빠지지 않은 낙질(落帙)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어느 책도 낱권이 아닌 전집으로 완벽히 갖추고 있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문중문고이다.
서원과 함께 향촌 사회에서 사림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 모체가 되는 것은 중국 송(宋)의 남전여씨문중(藍田呂氏門中)에서 그 향리를 교도하기 위하여 만든 “여씨향약(呂氏鄕約)”이다. 여씨향약은 주자의 가감, 증보에 의하여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으로 더욱 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