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실록의 외사고 봉안
1) 외사고의 설치
조선전기부터 실록은 서울에 있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전주·성주 등 지방의 중심지에 분산 보관하였다. 한 지역에 실록을 보관했다가 소실될 경우 영원히 전대의 실록을 복구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였다. 특히 고려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여겨지는 {고
문집총간30』, 민족문화추진회, 1989, 430쪽. 최운식, 『한국고소설연구』, 보고사, 1995, 43쪽, 재인용.
고 하였다. 이는 소설이 ‘도를 어지럽히고 뜻을 미혹하게 한다(亂道惑志)’하여 소설을 배격한 것이다.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은 “‘…『삼국지연의』에만 있다고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 그 내
노가재 연행일기
1. 여행자 소개
김창업(金昌業)
1658-1721, 숙종 때의 문인으로, 자는 대유(大有), 호는 노가재(老稼齋)다. 명문집안에서 태어나, 1681년(숙종 7년)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송계(松溪 : 지금의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전원생활을 하였다. 1712년 형 김창집(金昌集)이 청나라
문집으로는 가장 시기가 앞서는 『桂苑筆耕集』이 남아 있고 작품 양도 상당수에 이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말 문인 가운데 최치원의 시문에 관해 학계의 연구와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된 바 있다. 1920년대부터 30년대에 걸쳐 최치원에 대한 평전 중심의 글이 몇 편 『개벽』에 실린 필자 미상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