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외인문학은 조선시대 한문학의 세 갈래 중 하나로서 관각문학, 처사문학과 함께 큰 맥을 이루는 문학이다. 조선조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각종 문물제도의 정비가 완성되면서 관인(관각)문학은 생산적 기운을 서서히 상실하기 시작하였다. 또 관인문학을 담당했던 일부 관료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체제의 새로운 지배층 등장한 사대부의 문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대부문학은 조선전기 문학사를 완벽하게 주도하면서 그 절정기를 맞이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세계관을 달리하는 유파적 분화를 경험하게 된다. 관각문학, 사림파문학, 방외인문학이 그것들이다. 이들 담당층의 문인들은 기본
사대부문학과 대립되는 방외인문학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대였다. 이런 시대를 살고 간 김시습은 현실보다 나은 이상을 추구하려 했던 지식인으로서, 이상을 품고 수학할 때는 관인문학에 열중했고 처사가 되었을 때는 처사문학 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 두 세계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었으
방외인적 삶을 택하였다. 정치적 수난과 소외, 집권층에 대한 불만, 신분적 불우 등 반발과 일탈의 동기는 매우 다양하다. 또한 행적이나 문학, 사상의 경향 역시 도(道), 선(仙), 방술(方術)에 대한 취향으로부터 착취에 대한 저항에 이르기까지 개인적 편향을 달리 정학성, 「사대부문학의 성격과 비판
사대부들은 조선전기에는 양반층의 권위에 도전한 소설이 사회를 전복시키고 퇴폐적이며, 외설적이며,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소설창작을 금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있고 권선징악(勸善懲惡)과 흥미 있는 소설이 많아 그 이후로 양반들도 소설창작을 하게 되었다. 이 장에서는 국문학개론1공통) 조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