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라이 스티븐슨 후보
“당신은 4년 전 보다 좋아졌습니까?”
“또 시작이네요”
“나는 내 상대의 젊음과 미숙함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없다.”
시민대표로서 209명의 중립적인 유권자를 토론회에 참여시켜
패널리스트 대신 이들이 직접 후보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방식
선거였다는 것에 그 이유가 같으며 둘째, 미디어의 발달을 통해 일찌감치 Web 선거의 중요성을 인지한 한국의 경우, 2002년 대선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는 역전승을 거두었으며, 이번 오바마의 대선승리는 대다수의 학자들이 오바마의 선거전략이 웹을 이용했다는 점에 있어 한국의 대선과 미국
대선이 39만여 표, 2002년에는 57만여 표 차이로 승패가 갈린 것을 고려하면 인터넷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줄 알 수 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동안 하루 평균 49건의 노상유세가 있었던 반면 2002년 대선에는 하루 평균 3건에 그칠 정도로 선거운동의 상당부분이 TV나 인터넷으로 장소를 이동하였고,
선거 때부터라고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마케팅의 기법이 도입되고 광고회사가 직접 참여하여 선거의 주요 도구로 정치광고가 등장한 것은 1987년 13대 대선 때부터이기 때문이다.(김춘식 & 조전근, 2000) 이후부터 정치광고가 선거캠페인에 있어 주요한 전략으로 자리 잡았고, 선거에 있어 미디어라 선거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IMF 구제 금융 요청 또한 15대 대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통합 선거법 개정으로 인해 옥외집회가 금지되고 처음으로 후보자간 TV토론회가 의무적으로 실시되었다. 또한 TV 및 라디오광고, 방송연설 등의 횟수가 크게 증대함으로써 미디어가 선거에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