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발을 직접적으로 유도한 것은 아니더라도 소련의 승인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타이완의 공산화와 비민주적인 타이완 정권에 대한 방위도 반대하였다.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목표가 경제재건과 체제안정이었기 때문에 이승만대통령의 북진 정책을 경계하는 입장을
미국의 군사적 방위선을 알류샨 열도•일본 본토•오끼나와•필리핀을 있는 선으로 한정지어, 한국과 타이완을 그 선 바깥에 놓았다. 이와 같은 방위선 책정의 문제로 인해 나중에 애치슨은 “공산주의자의 공격에 청신호를 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애치슨의 연설을 실제로 북한이나
북한 측의 선제공격을 유도하면서 이를 빌미로 미군의 힘을 빌려 통일을 이루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수도 서울을 사수하는 대신에 정부를 즉각 대전을 옮기는 결정을 내린다. 이는 자신이 포로가 되지 않아야 북진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모
대한 점이 문제가 된다. 미국은 남한 철수 뒤에 설치된 한국군사지원단 연락사무소를 통해 중국, 소련의 대북 지원 등의 정보를 포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 정부의 공격적인 자세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며 소련의 세계 공산주의 전략과 합치 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