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
1. 한국전쟁과 미국
미국의 한국전쟁에 관련된 기본전략을 살펴보면 중국에서의 공산정권의 승리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힘을 봉쇄하고 가능한 한 감퇴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치슨 국무장관은 한국과 타이완
한미공모설
이승만의 제1공화국의 북진 통일론이 대남 도발을 촉진시켰다는 설이다. 이승만은 여러 차례 무력 북진 통일을 부르짖었으며, 미국의 군사 원조를 공공연히 요청한 바 있다. 실제로 1950년대 초부터 남북은 경쟁적으로 군비를 증강시키기 시작했고, 미국이 국군을 강화시키면 이승만이 무력
공격을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의 이와 같은 행위를 군통수권자인 대통령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4월 11일 맥아더 장군을 모든 직위에서 전격 해임하고 리지웨이 장군을 그 후임으로 임명했다. 이때부터 UN군 측과 공산군 측은 전쟁의 제한에 관한 묵시적인
남북 공동성명이 성사되기 전으로 남북한 사이에 어떠한 공식적인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는 제1공화국시기(1953~1960), 제2공화국시기(1960~1961), 제3공화국시기(1961~1971)의 세 시기로 세분화할 수 있다. 이정복. 『한국 정치의 분석과 이해』, 서울 :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 71쪽
제1공
실패했던 반민특위사건, 분단에 있어서 이승만의 책임론, 제 1공화국의 대미관계에 대한 기존의 비판론과 새로운 해석을 제시해본다. 아울러, 단순히 과거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친일파청산과 남북분단, 한미동맹 등의 현재적 의미를 띠는 문제들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