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 타이완 정책은 타이완의 공산화는 반대하나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장제스 정권에 대한 방위 역시 반대한다는 입장을 가졌고, 대 남한 정책은 기본적으로 미국정부의 목표가 경제재건, 국내체제 안정이었기 때문에 그에 반하는 이승만정부의 북진 계획을 경계하였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
이승만정부만을 정통성 있는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로 인정했다. 그래서 북한은 남한에 무장병력을 투입한 후 제주폭동 사건을 비롯해 1948년 여수∙순천반란사건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했고, 그 이후 1949년 유격투쟁전략을 시도했으나 이것도 무위로 끝났다. 결국, 1950년 봄까지 남한에 대
이승만정부의 통일정책의 특징은 정부 수립 당시 북한 당국을 철저히 부정하는 대북 인식에서 출발 하였고 유엔 감시하 북한지역에서 자유 총선을 실시하여 대한민국에 합류해야 함을 가장 중요한 통일방법으로 생각하였고 미국과 등에 업고 북진통일 하자고 이승만대통령 개인적으로 주창을 하였
미국의 개입과 발췌개헌안 통과
-미국은 한국정부에 계엄령 해제와 국회의원 석방을 요구했으나, 이승만은 미국의 경고문을 무시하고 내정 간섭을 비난함.
-미국은 대통령 직선제와 대통령에 의한 의회통제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개헌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림.
-6월 20일 이
뒤 대립하게 된 미국과 소련,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진 동아시아 사회주의 세력과 미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세력의 대립이 존재했다. 이런 대립은 1947년 이후 더욱 깊어졌고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이 선언되고 난 뒤 냉전은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