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라서 그는 신변이 위험해지고 완전실명의 불행한 처지에 놓여져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 이후가 그의 생애 중의 제3기에 해당하며, 기적적으로 처형을 면하게 되어 만년의 3대작을 내놓게 된 것이다.
인간의 원죄(原罪)와 그 죄로 인한 낙원상실의 비극적 사건을 다룬 대서사시 《실낙원》
시와, “Seize the day",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라는 인생철학으로 왕당파 시인의 전형이 되었다. 왕당파시인들은 정부들에게 바치는 연애시 뿐 아니라 때때로 전쟁이나 명예, 또는 왕에 대한 충성을 노래한 시를 쓰기도 했다. 때로는 이같은 주제들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시를 쓰기도 했는데, 그중 가장
“영광스런 시험"을 이겨낸 사랑의 "빛나는 증거, 고귀한 예"를 보여주는 아담의 선택을 통해, 비로서 아담과 자신이 결코 갈라질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이브는 아담이 생사를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통해 불가분한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하다. 아담으로부터 분리/독립을 하고 신의
시기와 그 이후 1960년대 중․후반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론을 창조적으로 문학에 적용하려 했던 시기로 구분한다.
해방 직후에서 ‘고상한 리얼리즘’이 정착되는 1947년까지 북한문학의 초입은 일제 치하 프로 문학에 대한 비판적 계승이 주된 골자를 이루고 있으며, 1946년 토지개혁을 계기
시인이었다.
런던에서 청교도신앙을 가진 부유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나 청교도혁명으로 수립된 올리버 크롬웰 정부에 투신하여 약 10년간 라틴어 장관을 지냈으며, 종교· 언론·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많은 소 논문을 집필했다, 특히 이혼의 자유에 대한 글은 영국 사회의 논란을 일으켰다.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