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량’의 배가 절 문 앞까지 오느라고 큰 물결이 일어도 대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고 있으니, 어떤 세파(世波)에도 꿈적하지 않을 기량을 갖추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좋은 경치를 사방으로 두르고 한가로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스님들이 있는 절을 두고, ‘황화 황화(皇華): 천자(天子)의 사신(使臣
박인량이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된다. 수이전에는 ‘최치원전’, ‘선녀홍대’와 같은 글이 있는데 이를 최치원의 자서전이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최치원은 작자가 될 수 없다. 또한 김척명의 경우 그 시기가 다소 늦기 때문에 작자가 될 수 없다. 박인량 또한 작자라 칭하기보다 엮은이 정도로 칭하는
박인량이 지은 『수이전』 설,
셋째 김척명이 개작한 『신라 수이전』 설
일반적으로 최치원을 편저자로 보고 박인량을 증보자로 김척명을 개작자로 파악하는 견해가 널리 인정되고 있다.
후대의 문헌에 흩어져서 부분적으로 실려 전해지기 때문에 수이전의 작품들을 수이전 일문이라 함.
13세
박인량이 엮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최치원이 엮은 <수이전>의 잔본을 가지고 박인량이 보충해 다시 엮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고려 중기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부터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이르는 약 150년 동안은 우리 문헌설화 기술의 자리매김을 한 시기이다. 옛날부
박인량(朴寅亮: ?∼1096)이 지은 설화집. 한국의 첫 설화집으로 책은 전해지지 않고, 수록되었던 설화 가운데 10편이 《삼국유사》를 비롯한 후대의 다른 여러 책들에 각각 실려 전해진다. 저자가 최치원(崔致遠)이라는 설이 있으나 본문 중에 최치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아닐 가능성이 크다. 김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