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보다는 권력과 재물을 중시하는 퐁토가 이루어 진 것이다.
발칸전쟁은 1912∼1913년에 발칸반도를 무대로 발생한 2번의 전쟁으로 비스마르크가 물러난 후 비스마크 체제에서 베르사이유 체제로 넘어가는 중요한, 유럽에 커다란 전환점이된 제1차세계대전으로 가는 커다란 요인을 제공하게 된다.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이로 인해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 유럽의 주요 열강들이 모두 참전하는 세계대전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후에도 참전국들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3. 전쟁의 발발
1914년 6월 28일, 긴장이 고조되는 발칸의 일각,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육군 대
여공작 부부가 세르비아에 방문했을 때 세르비아 민족주의 조직의 일원인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되었다. 이는 제1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사라예보 사건의 원인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여러 발칸반도 국가들의 민족주의가 확산하였기 때문이다.
,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이탈리아 등의 열강들도 뒤 따라 내륙으로 진입하기 시작했고 결국 아프리카는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광할한 땅과 자원을 가진 아프리카가 최고의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유럽인들의 손에 들어간 것은 그 뒤 인류를 전쟁의 구렁텅이에 밀어넣는 결과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