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가 이 시기에 태어난 것은 그로서는 행운이었다. 백거이는 800년 29세 때 최연소로 진사에 급제했다. 이어서 서판발췌과, 재식겸무명어체용과에 연속 합격했다. 그 재능을 인정받아 한림학사·좌습유 등의 좋은 직위에 발탁되었다. 〈신악부〉·〈진중음〉 같은 풍유시와 〈한림제고〉처럼 이상에
-이백시의 복고적 경향-
이백은 촉의 선배인 진자앙(陳子昻)을 흠모하여 시의 풍격에 있어서 육조의 기려함을 제거하고 복고적인 문학을 계승하려 하였는데 그의 <古風> 59수는 바로 진자앙의 <感遇詩>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古風>시 첫머리 가운데서 “대아의 작품이 오랫동안 지어지지 않으니, 내
하였으며 개인적 문제에 침잠하여 이를 반항적이고 격정적인 어조로 시에 담아내기도 하였다.
고문(古文)운동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당 전기는 중국문학사상 진정한 소설 창작이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술 방식도 크게 바뀌어 소설은 부수적인 성격에서 독립적인 문체가 되었다.
표시하였다. 백거이의 <진중음>이나 <신악부>등은 그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장한가>나 <비파행>과 같은 소설적인 구성을 가진 이야기 시를 만들어 서민층에 많이 읽혔다. 백거이 등과 대립된 다른 한 무리의 시인 의중형은 무늬에 있어서 여러가지 변화를 낳았으며 당말까지 계승하였다.
제6장 이백과 두보
ㆍ 이 시기의 특징
- 이백과 두보는 중국문학 전체를 대표한다. 또한 이백은 詩仙, 두보는 詩聖이라 불린다
- 두 시인의 문학을 낭만주의와 현실주의 성당의 번영과 쇠락, 위대한 개인과 위대한 전통으로도 부른다
1. 시선과 시성
ㆍ 현실주의와 낭만주의
-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