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 학살사건은 미군이 아닌 한국군 특무대(CIC)와 경찰에 의해 훨씬 잔혹하고 조직적이며 계획적으로 진행됐다.
(1) 학살의 규모
피학살자의 숫자도 미군의 민간인 학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적이다.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으로 학살된 보도연맹원의 숫자는 정부에서 철저히
3. 보도연맹원 학살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이 전쟁 도발하여 남침하면서 한국전쟁이 발발했을때,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은 서울을 버린 채 특급열차를 타고 피난을 가는길에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조선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협조할 것.’이라는 의심을 가졌다. 그래서 (좌파인사들에 대
보도연맹 조직은 사라졌지만, 보도연맹 학살에 대한 정확한 사실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예비검속 및 예방학살'이라는 명분으로 군인(헌병)과 경찰이 이들 보도연맹원들을 살해한 후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히 은폐하고 금기시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도연맹사
보도연맹의 자세한 내막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도연맹에 관해 물어본다면 보살피며 지도한다는 뜻의 보도(保導)라는 것보다는 언론 쪽과 관련된 사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또한 이 사건에 대해 안다고 해도 보도연맹원은 빨갱이라는 식의 생각이 아직까지 남아 있
Ⅰ. 들어가며
한국전쟁은 불과 반세기 전에 우리 땅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전쟁이다. 이를 전쟁이 발발한 날짜를 따서 6·25전쟁이라 부르기도 하며, 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이 쏟아부은 물자 및 사상자가 막대하지만, 2차대전과 베트남전 등으로 인해 사람들의 뇌리에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