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을 일으켰다.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은 미군이 아닌 한국군 특무대(CIC)와 경찰에 의해 훨씬 잔혹하고 조직적이며 계획적으로 진행됐다.
(1) 학살의 규모
피학살자의 숫자도 미군의 민간인 학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적이다.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으로 학살된 보도연맹원의 숫
학살의 문제, 그리고 정치 및 사회, 문화에 미친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Ⅱ. 불완전완 해방과 이념의 문제
1. 우리는 과연 독립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여러 학자들의 주장들이 있다. 도올 김용옥이나 성공회대의 한홍구 교수는 “일제는 소련의 공격과 원자폭탄의 충격속에
위원회, '진실화해위,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 3건 진실규명 보도자료' (www.jinsil.go.kr, 2008)
ㄷ. 전북 익산역(이리역) 폭격
1950년 7월 11일 오후 2시 40분경 이리역(현 익산역) 상공에 나타난 미군 전폭기 B29기 두 대가 무차별 폭격으로 20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인민군이 이리에 도
학살 실태보고서'를 11월 11일 발간할 예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한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 가운데는 미군에 의한 학살 150건과 인민군에 의한 학살 90건 등이 포함돼 있으며 1천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사건도 30여건에 달한다. 특히 경주 코발트 광산에서 3천500여명이 학살당했으며 강화도지역에
학살 실태보고서'를 11월 11일 발간할 예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한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 가운데는 미군에 의한 학살 150건과 인민군에 의한 학살 90건 등이 포함돼 있으며 1천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사건도 30여건에 달한다. 특히 경주 코발트 광산에서 3천500여명이 학살당했으며 강화도지역에